Spiritual Writing2(2004-2007)
大 레오의 사순절 설교 묵상-20 "진리와 자비의 길"
Povi-Enuh
2012. 3. 22. 05:32
大 레오의 사순절 설교 묵상-20
진리와 자비의 길
아무쪼록 우리가 그분 영광의 영예를 누릴 수 있으려면 우리 안에 자비와 진리가 자리잡게 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구세주께서는 구원하실 사람들에게 자비와 진리의 길 을 통해 오셨으니, 구원받을 사람들도 이 길을 통해 구원을 베푸시는 그분께 달려가야 합니다. 진리는 자비 안에서 성장하는가 하면, 자비는 진리 안에서 전진합니다. 진리에 역행하는 사람은 자비로운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비와 거리가 먼 사람은 의義를 행할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 덕을 넉넉히 지니지 못한 사람은 둘 다 실천하지 못합니다. 사랑은 믿음의 힘이 되며, 믿음은 사랑의 힘이 됩니다. 이 둘이 서로 불가분의 결합으로 맺어 있을 때, 둘 다 그 명칭에 참으로 부합되며 알찬 결실을 맺게 됩니다. <大 레오>
유대 제사장들은 ‘유용한 제물’을 가져오는 자에 한하여 죄사함을 말하였고, 세례자 요한은 그 어떤 제물이 아닌, ‘물’로 우리의 죄가 씻어질 수 있음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물이나 물의 도움을 얻지 않아도, 성전이나 요단강에 나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의 자리에서,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진리가 드러날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혹시 그들이 모르지나 않을까 싶으셨는지, 사람들이 있는 곳곳마다 다니시면서 그들에게 친숙한 언어로 말을 건네시며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소박한 옷고름 마다 구원의 얼굴로 다가가셨던 것입니다. 유대 제사장들은 ‘유용한 제물’을 가져오지 않는 자들을 ‘죄인’이라 저주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무것 없어 노숙하는 많은 이들에게도 조건과 단서를 그리고 공식을 강요하였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값없이 와서 먹고 마실 수 있는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인지를 말과 눈으로 그리고 삶으로 여실히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말로 다 할 수 없기에 ‘보여질 수 밖에 없는 것’ 입니다. 수만가지의 언사로 묶여진 조항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은 진리는 이성Vernunft의 영역에 제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예수께서 나병환자를 만나셨을 때 그를 ‘민망히 여겼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희랍어 ‘스플랑크니조마이’σπλαγχνίζομαι 의 명사형 ‘스플랑크나’σπλαγχνα는 본래 우리 몸속 ‘내장’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병을 앓고 있는 그의 현상만을 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룩한 진리의 얼굴을 하고 서 있는 장로들의 강제에 의해, 사람들을 만날 때는 저 앞에서부터 ‘나는 더럽습니다’ 소리치며 다녀야 했고, 사람과 한데 섞여 살 수없어 울타리 밖으로 쫓겨나 살아야 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언제 돌에 맞아 죽을지 모르는 옴두꺼비처럼 살았던 그가 예수의 구원의 소리를 듣고서 무리를 헤쳐나와 엎드린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 환자의 지난至難한 역사를 읽으셨던 것입니다. 말 그대로 어려움의 극치를 온통 겪으며 살았던 그를 보시고 예수님의 ‘내장’σπλαγχνα은 요동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극악한 고통을 표현하기를 ‘단장’斷腸이라 하였듯이 그를 바라보는 주님의 마음은 애닳다 못해 사명할 지경에 이를 듯 하셨나봅니다.
우리 주님의 구원은 진리와 자비입니다. 진리와 자비는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기에, 사람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자비를 떠난 경색된 진리 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듯이, 진리를 떠난 모호한 자비 는 결코 뿌리를 내릴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리와 자비로 오셨듯이, 길을 걷는 우리도 이와 같은 마음으로 충만해야겠습니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진리가 있을 따름인데 여러분이 그의 가르침을 그대로 듣고 배웠다면
옛 생활을 청산하고 정욕에 말려 들어 썩어져 가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 버리고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 입어야 합니다.
새 사람은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독설과 격정과 분노와 고함소리와 욕설 따위는 온갖 악의와 더불어 내어 버리십시오.
여러분은 서로 너그럽게 따뜻하게 대해 주며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십시오.
[에베소서 4장 21-24절, 31-3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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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20>
진리와 자비의 길
아무쪼록 우리가 그분 영광의 영예를 누릴 수 있으려면 우리 안에 자비와 진리가 자리잡게 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구세주께서는 구원하실 사람들에게 자비와 진리의 길 을 통해 오셨으니, 구원받을 사람들도 이 길을 통해 구원을 베푸시는 그분께 달려가야 합니다. 진리는 자비 안에서 성장하는가 하면, 자비는 진리 안에서 전진합니다. 진리에 역행하는 사람은 자비로운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비와 거리가 먼 사람은 의義를 행할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 덕을 넉넉히 지니지 못한 사람은 둘 다 실천하지 못합니다. 사랑은 믿음의 힘이 되며, 믿음은 사랑의 힘이 됩니다. 이 둘이 서로 불가분의 결합으로 맺어 있을 때, 둘 다 그 명칭에 참으로 부합되며 알찬 결실을 맺게 됩니다. <大 레오>
유대 제사장들은 ‘유용한 제물’을 가져오는 자에 한하여 죄사함을 말하였고, 세례자 요한은 그 어떤 제물이 아닌, ‘물’로 우리의 죄가 씻어질 수 있음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물이나 물의 도움을 얻지 않아도, 성전이나 요단강에 나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의 자리에서,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진리가 드러날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혹시 그들이 모르지나 않을까 싶으셨는지, 사람들이 있는 곳곳마다 다니시면서 그들에게 친숙한 언어로 말을 건네시며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소박한 옷고름 마다 구원의 얼굴로 다가가셨던 것입니다. 유대 제사장들은 ‘유용한 제물’을 가져오지 않는 자들을 ‘죄인’이라 저주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무것 없어 노숙하는 많은 이들에게도 조건과 단서를 그리고 공식을 강요하였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값없이 와서 먹고 마실 수 있는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인지를 말과 눈으로 그리고 삶으로 여실히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말로 다 할 수 없기에 ‘보여질 수 밖에 없는 것’ 입니다. 수만가지의 언사로 묶여진 조항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은 진리는 이성Vernunft의 영역에 제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예수께서 나병환자를 만나셨을 때 그를 ‘민망히 여겼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희랍어 ‘스플랑크니조마이’σπλαγχνίζομαι 의 명사형 ‘스플랑크나’σπλαγχνα는 본래 우리 몸속 ‘내장’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병을 앓고 있는 그의 현상만을 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룩한 진리의 얼굴을 하고 서 있는 장로들의 강제에 의해, 사람들을 만날 때는 저 앞에서부터 ‘나는 더럽습니다’ 소리치며 다녀야 했고, 사람과 한데 섞여 살 수없어 울타리 밖으로 쫓겨나 살아야 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언제 돌에 맞아 죽을지 모르는 옴두꺼비처럼 살았던 그가 예수의 구원의 소리를 듣고서 무리를 헤쳐나와 엎드린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 환자의 지난至難한 역사를 읽으셨던 것입니다. 말 그대로 어려움의 극치를 온통 겪으며 살았던 그를 보시고 예수님의 ‘내장’σπλαγχνα은 요동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극악한 고통을 표현하기를 ‘단장’斷腸이라 하였듯이 그를 바라보는 주님의 마음은 애닳다 못해 사명할 지경에 이를 듯 하셨나봅니다.
우리 주님의 구원은 진리와 자비입니다. 진리와 자비는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기에, 사람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자비를 떠난 경색된 진리 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듯이, 진리를 떠난 모호한 자비 는 결코 뿌리를 내릴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리와 자비로 오셨듯이, 길을 걷는 우리도 이와 같은 마음으로 충만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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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진리가 있을 따름인데 여러분이 그의 가르침을 그대로 듣고 배웠다면
옛 생활을 청산하고 정욕에 말려 들어 썩어져 가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 버리고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 입어야 합니다.
새 사람은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독설과 격정과 분노와 고함소리와 욕설 따위는 온갖 악의와 더불어 내어 버리십시오.
여러분은 서로 너그럽게 따뜻하게 대해 주며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십시오.
[에베소서 4장 21-24절, 31-3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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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