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ual Writing2(2004-2007)
大 레오의 사순절 설교 묵상-21 "초대받은 길의 걸림돌"
Povi-Enuh
2012. 3. 22. 05:35
大 레오의 사순절 설교 묵상-21
초대받은 길의 걸림돌
우리가 가장 거룩한 신비를 거행해야 하며, 사십 일 동안 절제하여 빠스카 축제를 잘 준비하도록 성령께서 그리스도 백성에게 합당한 가르침을 주시는 이때에, 악마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을 거슬러 더 폭악하게 날뜁니다. 정화의 이러한 이유는 구원에 유익한 규범을 준수하도록 우리를 이미 초대 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제시된 속죄생활을 열심히 하도록 지시해 줍니다. 사실 이 날들을 더욱 거룩하게 지낸 사람은 그만큼 주님의 빠스카를 더 경건하게 공경했음을 입증합니다. <大 레오>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악마가 하는 일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악마의 일은 ‘because'에 한치 벗나남이 없이 귀속되지만, 하나님의 일은 because를 가로지름과 동시에 inspite of의 영역을 넘어섭니다. 악마가 하는 일은 우리 눈 앞에 인과응보의 원리에만 해당되어 펼쳐지지만,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인식으로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견인하십니다. 악마에게는 ‘여백의 여유’가 없기에, 역설paradox의 미를 펼치시는 하나님 앞에 자멸하고 맙니다. 세상의 논리적 사고를 넘어선 하나님의 방식은 차마 신비 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역설의 공간은 인간이나 악마가 헤아릴 수 없는 우주적 깊음입니다. 이러한 대적할 수 없는 광활한 하나님의 권세로 인해 악마는 결국 조급함을 이기지 못하고 패전의 징조를 스스로 예감합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괴성으로 자신의 존재만이라도 드러내 보이려 할 것입니다.
사순절의 때는 하나님 구원의 신비가 절정에 다다르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마의 마지막 고함을 들을 수 있는 때이기도 합니다. 이 때에는 주님의 옷자락만이라도 붙잡고자 손을 내어 뻗었던 혈루증 여인의 믿음 처럼, 그분과의 접촉으로 인해 구원의 흐름이 전이되고 완성된다는 믿음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혈루증 여인은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고자 그 앞에 나아오는 동안
방해하는 뭇 사람들로 인하여 이리 채이고 저리 채였을 것이지만, 그녀는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여 사력을 다해 주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리고 자비로 넘치는 그분의 눈길이 그녀에게 닿았을 때에 구원의 신비는 그녀를 감싸고 있는 악의 굴레에서 그녀를 견인해 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녀가 주님에게로 다가서는 순간은 구원을 위한 길임과 동시에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고통의 절정이었습니다. 평시 가만 놔두었던 사람들도 그때는 길을 막아 서서 팔을 비틀어 채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음 속에 들끓었던 좌절과 포기의 속삭임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거칠고 힘겨운 걸음을 계속 이어나갔던 것입니다. 사람들 머리 사이로 가물거리는 주님의 형상이 보였을 때 그녀는 더더욱 힘을 내었을 것입니다.
모리스 젱델 은 “악은 우리를 물질세계의 물질로 변화시킨다”고 말합니다. 악은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한 성화의 존재가 되지 못하도록 막아서며 그저 감겨진 태엽처럼 한시적으로 풀리는 짜릿함에 만족하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사순절을 사는 우리는 깨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순간이 아닌 영원이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자비하심으로 구원의 신비를 지금 이순간에도 체감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내딛는 발걸음을 한층 더 무겁게 하는 진흙발일지라도, 더디어도 발을 묶어 세우지 않고 줄곧 걸어나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찾아 나선 길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초대해 주셨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
형제 여러분, 나는 그것을 이미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면서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를 부르셔서 높은 곳에 살게 하십니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며 내가 바라는 상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성숙한 사람은 모두 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살아 가야 합니다.
[빌립보서 3장13-15a절] ■■■■
<2004.03.23>
초대받은 길의 걸림돌
우리가 가장 거룩한 신비를 거행해야 하며, 사십 일 동안 절제하여 빠스카 축제를 잘 준비하도록 성령께서 그리스도 백성에게 합당한 가르침을 주시는 이때에, 악마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을 거슬러 더 폭악하게 날뜁니다. 정화의 이러한 이유는 구원에 유익한 규범을 준수하도록 우리를 이미 초대 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제시된 속죄생활을 열심히 하도록 지시해 줍니다. 사실 이 날들을 더욱 거룩하게 지낸 사람은 그만큼 주님의 빠스카를 더 경건하게 공경했음을 입증합니다. <大 레오>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악마가 하는 일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악마의 일은 ‘because'에 한치 벗나남이 없이 귀속되지만, 하나님의 일은 because를 가로지름과 동시에 inspite of의 영역을 넘어섭니다. 악마가 하는 일은 우리 눈 앞에 인과응보의 원리에만 해당되어 펼쳐지지만,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인식으로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견인하십니다. 악마에게는 ‘여백의 여유’가 없기에, 역설paradox의 미를 펼치시는 하나님 앞에 자멸하고 맙니다. 세상의 논리적 사고를 넘어선 하나님의 방식은 차마 신비 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역설의 공간은 인간이나 악마가 헤아릴 수 없는 우주적 깊음입니다. 이러한 대적할 수 없는 광활한 하나님의 권세로 인해 악마는 결국 조급함을 이기지 못하고 패전의 징조를 스스로 예감합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괴성으로 자신의 존재만이라도 드러내 보이려 할 것입니다.
사순절의 때는 하나님 구원의 신비가 절정에 다다르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마의 마지막 고함을 들을 수 있는 때이기도 합니다. 이 때에는 주님의 옷자락만이라도 붙잡고자 손을 내어 뻗었던 혈루증 여인의 믿음 처럼, 그분과의 접촉으로 인해 구원의 흐름이 전이되고 완성된다는 믿음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혈루증 여인은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고자 그 앞에 나아오는 동안
방해하는 뭇 사람들로 인하여 이리 채이고 저리 채였을 것이지만, 그녀는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여 사력을 다해 주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리고 자비로 넘치는 그분의 눈길이 그녀에게 닿았을 때에 구원의 신비는 그녀를 감싸고 있는 악의 굴레에서 그녀를 견인해 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녀가 주님에게로 다가서는 순간은 구원을 위한 길임과 동시에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고통의 절정이었습니다. 평시 가만 놔두었던 사람들도 그때는 길을 막아 서서 팔을 비틀어 채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음 속에 들끓었던 좌절과 포기의 속삭임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거칠고 힘겨운 걸음을 계속 이어나갔던 것입니다. 사람들 머리 사이로 가물거리는 주님의 형상이 보였을 때 그녀는 더더욱 힘을 내었을 것입니다.
모리스 젱델 은 “악은 우리를 물질세계의 물질로 변화시킨다”고 말합니다. 악은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한 성화의 존재가 되지 못하도록 막아서며 그저 감겨진 태엽처럼 한시적으로 풀리는 짜릿함에 만족하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사순절을 사는 우리는 깨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순간이 아닌 영원이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자비하심으로 구원의 신비를 지금 이순간에도 체감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내딛는 발걸음을 한층 더 무겁게 하는 진흙발일지라도, 더디어도 발을 묶어 세우지 않고 줄곧 걸어나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찾아 나선 길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초대해 주셨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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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여러분, 나는 그것을 이미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면서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를 부르셔서 높은 곳에 살게 하십니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며 내가 바라는 상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성숙한 사람은 모두 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살아 가야 합니다.
[빌립보서 3장13-15a절] ■■■■
<2004.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