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ual Writing2(2004-2007)

大 레오의 사순절 설교 묵상-30 "이성적 영혼"

Povi-Enuh 2012. 3. 22. 06:30

大 레오의 사순절 설교 묵상-30
이성적 영혼


이성적인 영혼 은 “육이 영을 거슬러 욕정을 일으키고 영이 육을 거슬러 일어날 때”(갈5:17)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움을 받아서 대비합니다. 또 그런 영혼은 절제의 못들과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기를 유혹하는 해로운 원욕들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大 레오>


인간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신비의 근원은 무엇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짧디 짧은 단견으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우리들의 현실 생활에 비추어 볼 때,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을 이해하고 그분을 우리 안에 모실 수 있다는 것, 아니 우리가 모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과도 같은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모실 때에 우리 안에 어떤 작용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독일 관념론의 창시자라 불리는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는 인간의 인식에 있어서의 두 원천을 감성과 오성이라 하였습니다. 그에 의하면 감성Sinnlichkeit 은 인식에 있어서 다양한 재료를 제공해 주고 오성Verstand 은 그 재료에 통일적인 형식을 부여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고 직관없는 개념은 공허하다”는 저 유명한 [순수이성비판]의 서문에서의 말에서 처럼, 인간의 인식은 이 두가지 원천이 조화를 이루어야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무를 본다거나, 글을 쓴다거나, 혹은 무언가를 계획하고, 평가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인식에서 감성과 오성이 주고 받는 현상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런데 그에 의하면, 세상에는 인식의 영역을 넘어서는 이념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념의 예로서 그가 제시한 것은 영혼, 우주, 하나님이었습니다. 영혼의 불멸성, 우주의 무한성, 신의 존재와 섭리 등에 관해서는 감성과 오성으로부터 해답을 얻어 낼 수 없기에, 이러한 이념을 대상하는 하는 것을
이성Vernunft
이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임마누엘 칸트가 인간의 인식을 이처럼 세분화한 것은 독일 관념론Deutscher Idealisumus의 정초가 되었다는 단순한 의미를 떠나 인간에게 부여된 이성적 능력이 우리로 하여 하나님 인식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고, 이로써 ‘생각하는 자아’는 ‘책임적 자아’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에게 ‘필요한 하나님’ 즉 ‘요청으로서의 하나님’을 말하는 칸트의 언명은 당대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를 재조명해볼 수 있는 단초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분명
이성적 존재
입니다.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는 것은 단순한 ‘오성적 존재’를 뛰어 넘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리원칙이나 논리성을 추구하는 차원에서 훨씬 더 나아가 궁극적인 선과 악에 대해 바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허락된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들은 진리로 오신 그리스도를 바로 알아 볼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총을 눈 뜨고 보아, 그 은총을 ‘은총 그 자체"로 올바로 인식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신비로운 일입니까.

이 신비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생각해왔던 것은 그마만큼 우리들이 우리 자신에 대해 과신過信하거나, 혹은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무감각해져버린 까닭은 아닐까요. 하나님의 신비에 눈을 뜰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이성적 존재입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이성을 조화 속에 운용할 수 있는 것이 남겨진 과제입니다. 올바른 이성적 인간은 자기를 유혹하는 해로운 원욕들이 무엇인지 바로 인식하여 그것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을 더욱 더 신뢰하는 인간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비가 자기를 비우고 십자가를 지신 사건 안이 있음을 알고, 그것을 따라 갈 수 있는 용기가 자기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성적 존재는 자기 안에서 하나님의 창조 신비를 맛볼 수 있습니다. 끊임없는 자기 창조를 갈망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기도하는 사람은 성 어거스틴의 고백과도 같이
“당신은 곧 나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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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유를 주시려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여러분의 육정을 만족시키는 기회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려분은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십시오.
[갈라디아서 5장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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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