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ual Writing2(2004-2007)
내안의 기쁨의 공간
Povi-Enuh
2012. 3. 22. 07:05
내안의 기쁨의 공간
내 안에는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의 공간이 들어 있다. 나 자신의 깊숙한 곳에는 밖으로부터 오는 모든 종류의 이해와 인정보다 훨씬 강한 생명력과 삶에 대한 애착이 들어 있다. 기쁨은 표출되고 싶어하는 에너지이고, 밖으로부터 오는 방해 요소보다 강한 에너지이다. 폭포수가 아래로 흘러가면서 주변의 자갈을 비롯한 모든 잡동사니들을 씻어 내리고 바위를 닳게 하여 변형시키듯이, 기쁨은 우리의 삶이 흘러가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모두 쓸어 내려서 삶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하는 생동적인 에너지이다. 기쁨은 자신을 가두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기쁨은 모든 종류의 방해요소를 극복하고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하고 만다. - 안셀름 그륀 -
한동안 마치 봄을 건너뛴 천덕꾸러기같은 여름 날씨였지만, 이제 비로소 본 궤도를 찾은 듯 햇살 아래 선 저의 모습이 봄기운으로 밝아집니다. 계절에 맞지 않는 뜨거운 햇살이나 혹은 매서운 칼바람은 난로 앞에 앉아 수박을 우걱거리거나 선풍기 바람을 쬐며 귤 껍질을 열여 제끼는 것처럼, 입에서는 단맛과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지 몰라도 웬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감출 수 없습니다. 우리 몸 전체가 아닌 혀끝에서만 맴도는 과일 맛은 불구의 미각에 머무는 것처럼 완연한 사계절은 단지 눈 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에서 나오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 존재자들의 변화, 특별히 인간성의 회복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 현상이 순서가 뒤바뀌거나 엉킨채로 돌아가는 모습은 요사이 모든 장르에서 한창 유행인 퓨전fusion적 현상과는 다른 차원입니다. 세상이 급속도로 끝을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은 우리 마음의 빈곤과 공허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마음이 공허하면 우리의 행동도 공허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한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공허해지면 그와 관계하는 이들도 그와 같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모인 사회, 그 사회들이 모인 국가와 세계는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채로 공허한 것을 탐닉하고 만족하는 현상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모든 것은 우리 마음의 기쁨에서 출발합니다. 우리 마음이 기쁘다는 것은 자극적인 외부적 현상에 의해 기뻐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안셀름 그륀이 우리 안에 아무도 해치거나 침범할 수 없는 [기쁨의 공간]이 있다 말했듯이, 그 공간은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인위적인 공간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빚어주신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참 기쁨은 무엇이며, 그 기쁨이 있는 사람들에겐 어떤 삶이 가능할까요? 안셀름 그륀은 그것을 ‘폭포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세파에 맞서 이겨낼 수 있는 참 기쁨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 흐르는 물줄기처럼, 번잡스레 자리하고 있는 우리 마음의 거짓 기쁨을 몰아내고 거듭 위선적 기쁨을 심고자 막아서는 돌맹이들을 자연스런 에너지로 쓸어내려 저 폭포 아래에 내리쌓이게 하는 현상과도 같습니다.
누구나 하염없이 흘러내릴 기쁨의 폭포가 자리하고 있는 공간은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비롯된 기쁨이 아니면 참된 기쁨이라 할 수 없습니다. 외적 현상이 만들어 주는 기쁨은 도리어 참 기쁨의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겨울에 먹을 수 있는 수박은 혜택이요 진보라기 보다는 리듬을 깨는 어긋난 박자이며, 본 박자로 되돌아가야 하는 징조인 까닭입니다. 우리가 느끼고 표출할 수 있는 맛은 세치혀에 국한된 기쁨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서 시작되어 온 몸에 주어지는 참 기쁨입니다. 그 기쁨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요 그 기쁨을 표출하고 전이시킬 대상일 것입니다. <2004.05.06>
내 안에는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의 공간이 들어 있다. 나 자신의 깊숙한 곳에는 밖으로부터 오는 모든 종류의 이해와 인정보다 훨씬 강한 생명력과 삶에 대한 애착이 들어 있다. 기쁨은 표출되고 싶어하는 에너지이고, 밖으로부터 오는 방해 요소보다 강한 에너지이다. 폭포수가 아래로 흘러가면서 주변의 자갈을 비롯한 모든 잡동사니들을 씻어 내리고 바위를 닳게 하여 변형시키듯이, 기쁨은 우리의 삶이 흘러가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모두 쓸어 내려서 삶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하는 생동적인 에너지이다. 기쁨은 자신을 가두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기쁨은 모든 종류의 방해요소를 극복하고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하고 만다. - 안셀름 그륀 -
한동안 마치 봄을 건너뛴 천덕꾸러기같은 여름 날씨였지만, 이제 비로소 본 궤도를 찾은 듯 햇살 아래 선 저의 모습이 봄기운으로 밝아집니다. 계절에 맞지 않는 뜨거운 햇살이나 혹은 매서운 칼바람은 난로 앞에 앉아 수박을 우걱거리거나 선풍기 바람을 쬐며 귤 껍질을 열여 제끼는 것처럼, 입에서는 단맛과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지 몰라도 웬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감출 수 없습니다. 우리 몸 전체가 아닌 혀끝에서만 맴도는 과일 맛은 불구의 미각에 머무는 것처럼 완연한 사계절은 단지 눈 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에서 나오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 존재자들의 변화, 특별히 인간성의 회복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 현상이 순서가 뒤바뀌거나 엉킨채로 돌아가는 모습은 요사이 모든 장르에서 한창 유행인 퓨전fusion적 현상과는 다른 차원입니다. 세상이 급속도로 끝을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은 우리 마음의 빈곤과 공허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마음이 공허하면 우리의 행동도 공허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한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공허해지면 그와 관계하는 이들도 그와 같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모인 사회, 그 사회들이 모인 국가와 세계는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채로 공허한 것을 탐닉하고 만족하는 현상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모든 것은 우리 마음의 기쁨에서 출발합니다. 우리 마음이 기쁘다는 것은 자극적인 외부적 현상에 의해 기뻐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안셀름 그륀이 우리 안에 아무도 해치거나 침범할 수 없는 [기쁨의 공간]이 있다 말했듯이, 그 공간은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인위적인 공간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빚어주신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참 기쁨은 무엇이며, 그 기쁨이 있는 사람들에겐 어떤 삶이 가능할까요? 안셀름 그륀은 그것을 ‘폭포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세파에 맞서 이겨낼 수 있는 참 기쁨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 흐르는 물줄기처럼, 번잡스레 자리하고 있는 우리 마음의 거짓 기쁨을 몰아내고 거듭 위선적 기쁨을 심고자 막아서는 돌맹이들을 자연스런 에너지로 쓸어내려 저 폭포 아래에 내리쌓이게 하는 현상과도 같습니다.
누구나 하염없이 흘러내릴 기쁨의 폭포가 자리하고 있는 공간은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비롯된 기쁨이 아니면 참된 기쁨이라 할 수 없습니다. 외적 현상이 만들어 주는 기쁨은 도리어 참 기쁨의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겨울에 먹을 수 있는 수박은 혜택이요 진보라기 보다는 리듬을 깨는 어긋난 박자이며, 본 박자로 되돌아가야 하는 징조인 까닭입니다. 우리가 느끼고 표출할 수 있는 맛은 세치혀에 국한된 기쁨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서 시작되어 온 몸에 주어지는 참 기쁨입니다. 그 기쁨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요 그 기쁨을 표출하고 전이시킬 대상일 것입니다. <2004.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