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ual Writing2(2004-2007)
밥 먹는 자식에게
Povi-Enuh
2012. 3. 22. 07:10
밥 먹는 자식에게
천천히 씹어서
공손하게 삼켜라
봄에서 여름지나
가을까지
그 여러 날들을
비바람 땡볕으로
익어온 쌀인데
그렇게 허겁지겁
삼켜버리면
어느 틈에 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냐
사람이 고마운 줄을 모르면
그게
사람이 아닌 거여
비가 내렸다.
온 나라는 연록이 피어나며 생명의 기운이 뻗혀 난다.
►▷ 이 현 주 ◁◄
밥상 앞에서 투정부리는 것이 어디 우리 아이들만의 일일까요. 요사이 들어서 부쩍 투정이 느는 찬이와 건이를 보면서 오늘은 혼줄을 내주었습니다. 엄마가 정성스레 내준 밥상에 원하는 반찬이 없다는 이유였지요. 아이가 찾았던 반찬은 "콩나물"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콩나물을 유독 좋아했던 건이는 어딜가도 내주는 콩나물만큼은 남김없이 다 먹곤합니다만, 오늘 콩나물이 없다고 밥상 앞에서 딴짓만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버럭 소리를 내면서 아니 지르면서, 일어나 나가 있으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아이는 뜻밖의 제 호령에 울면서 밖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예전에 김지하 선생은 "밥은 하늘이다"고 했지요. 학창시절 그분이 그 화두로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얼핏 기억은 위에서 이현주 선생님이 하신 말씀과 많이 다르지 않는 듯 합니다. 밥이 하늘이라면 우리는 하늘을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그 하늘은 이 땅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밥을 고맙게 먹지 못하고 그저 허기를 달래기 위해 먹거나 혹은 마지 못해 먹는 습관이 우리의 삶에 배어 있다면 하늘과 대지로 인해 우리가 살고 있다는 고마운 마음을 지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삼형제 중에 막내였던 저는 유독 밥투정을 했던 철부지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를 위해 제 입에 맞는 반찬을 내주시기도 하셨고, 그러면 두 형님들은 농 섞인 말로 "엄마는 막내만 좋아한다"고 말했던 기억도 나는군요. 우리 아이들이 저를 닮은 걸까요? 제 자화상을 보는 듯 건이와 찬이가 밥투정 부리는 것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지만, 이미 부모가 되버린 입장에서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었습니다. 하늘나라를 둘레상에서부터 시작하셨던 예수님 때문에라도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 늦은 나이에 그것을 깨달은 저로써는 우리 가정에서 매일 나누는 밥상에서부터 하늘나라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밥상처럼 하늘나라를 맛볼 수 있는 시공時空이 또 있을까요. "~이 살아야 ~이 산다" 혹은 "~이 죽어야 ~가 산다"는 말이 유행이었지요? 그 유행에 동승해서 이런 말을 만들어 봅니다.
[밥상을 살려야 하늘나라가 산다]
이 말을 굳게 믿어봅니다. 제 밥상을 놓고 감사할 줄 모른다면, 나눌 길도 요원할 것이고, 나눌 길이 요원한 세상은, 드러낸 독아毒牙로 자신을 무는 꼴이 되기때문입니다. <2004.05.11>
천천히 씹어서
공손하게 삼켜라
봄에서 여름지나
가을까지
그 여러 날들을
비바람 땡볕으로
익어온 쌀인데
그렇게 허겁지겁
삼켜버리면
어느 틈에 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냐
사람이 고마운 줄을 모르면
그게
사람이 아닌 거여
비가 내렸다.
온 나라는 연록이 피어나며 생명의 기운이 뻗혀 난다.
►▷ 이 현 주 ◁◄
밥상 앞에서 투정부리는 것이 어디 우리 아이들만의 일일까요. 요사이 들어서 부쩍 투정이 느는 찬이와 건이를 보면서 오늘은 혼줄을 내주었습니다. 엄마가 정성스레 내준 밥상에 원하는 반찬이 없다는 이유였지요. 아이가 찾았던 반찬은 "콩나물"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콩나물을 유독 좋아했던 건이는 어딜가도 내주는 콩나물만큼은 남김없이 다 먹곤합니다만, 오늘 콩나물이 없다고 밥상 앞에서 딴짓만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버럭 소리를 내면서 아니 지르면서, 일어나 나가 있으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아이는 뜻밖의 제 호령에 울면서 밖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예전에 김지하 선생은 "밥은 하늘이다"고 했지요. 학창시절 그분이 그 화두로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얼핏 기억은 위에서 이현주 선생님이 하신 말씀과 많이 다르지 않는 듯 합니다. 밥이 하늘이라면 우리는 하늘을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그 하늘은 이 땅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밥을 고맙게 먹지 못하고 그저 허기를 달래기 위해 먹거나 혹은 마지 못해 먹는 습관이 우리의 삶에 배어 있다면 하늘과 대지로 인해 우리가 살고 있다는 고마운 마음을 지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삼형제 중에 막내였던 저는 유독 밥투정을 했던 철부지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를 위해 제 입에 맞는 반찬을 내주시기도 하셨고, 그러면 두 형님들은 농 섞인 말로 "엄마는 막내만 좋아한다"고 말했던 기억도 나는군요. 우리 아이들이 저를 닮은 걸까요? 제 자화상을 보는 듯 건이와 찬이가 밥투정 부리는 것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지만, 이미 부모가 되버린 입장에서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었습니다. 하늘나라를 둘레상에서부터 시작하셨던 예수님 때문에라도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 늦은 나이에 그것을 깨달은 저로써는 우리 가정에서 매일 나누는 밥상에서부터 하늘나라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밥상처럼 하늘나라를 맛볼 수 있는 시공時空이 또 있을까요. "~이 살아야 ~이 산다" 혹은 "~이 죽어야 ~가 산다"는 말이 유행이었지요? 그 유행에 동승해서 이런 말을 만들어 봅니다.
[밥상을 살려야 하늘나라가 산다]
이 말을 굳게 믿어봅니다. 제 밥상을 놓고 감사할 줄 모른다면, 나눌 길도 요원할 것이고, 나눌 길이 요원한 세상은, 드러낸 독아毒牙로 자신을 무는 꼴이 되기때문입니다. <2004.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