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ual Writing2(2004-2007)

인간으로 존재하라

Povi-Enuh 2012. 3. 22. 07:03
인간으로 존재하라

우리의 존엄성은 우리의 뱃속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저 무한한 존재가 머무시는 
성지聖地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를 가두고 있는 구조물을 비판하고 부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우리가 우주에서 벗어나 높이 떠올라 저 창조적 존재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것을 방해하는 거짓 자아를 우리 자신으로 여기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우리 스스로에게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인간이 존재하게 되면, 하나님도 우리의 역사 한 가운데에 우리의 자유가 숨쉬는 저 무한의 공간으로 나타나실 것이다. - 모리스 젱델 -


인간이 존엄한 가장 명백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인간이긴하나 하나님 자신이 당신의 모습으로 창조하신 그분의 분신이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이 아니고서는 달리 어떻게 자신의 모습대로 지을 수 없어서 지은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한사람 한사람 참 곱고도 귀하게 만드셨던 것입니다. 우리를 빚으시는 순간, 감격의 마음과 떨리는 손을 애써 가라앉히시며 정글디정근 사랑의 마음을 다해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 이로써 우리는 당신의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그러나 과연 어디 인간의 모습이 존엄하다고만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울까요? 속임과 술수, 거짓과 교만, 그리고 살인을 넘어 학살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그 끝을 다한 것인양, 드러낼 수 있는 극악한 행태를 모두다 꺼내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 창조의 신비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시시각각으로 급격해지고 있는 존엄성에의 도전은 종말을 예감토록 하곤 합니다.

어느 캄캄한 밤, 무섭도록 질주해 오는 죄책의 무게로 절망했던 적이 있습니까? 인생의 그릇된 판단과 실수로 인해서 자신을 학대하고 싶을 정도의 아픔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선택하고, 우리가 범하는 악한 행동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나의 판단, 나의 결정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래서 ‘나’로부터 나온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판단하고 결정했던 ‘나’라는 것은 온전한 ‘나’는 아닐 것입니다. 아니,
그 ‘나’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나’
였을 것입니다. 아직 ‘나’조차도 잘 모르는 ‘나’가 행한 일들로 인해서 그저 상처받고 손놓고 비관하는 모습은 ‘거짓 나’에게 두 번 속아넘어가는 일입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우리 안에서 정당한 듯 보이도록 수런대는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요, 훼손된 우리 자신을 방치하도록 꼬득이는 악한 존재의 음성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으로서 존재해야 합니다. 이것은 실존적 한계를 안고 있는 인간 현실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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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인간상의 포인트가 죄요 타락이요 절망이라면, 우리에게 가능성은 요원하기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리스 젱델의 말처럼 우리가 [저 무한한 존재가 머무시는 성지聖地]가 될 수 있는 존재인 것을, 바울 사도의 말처럼 [하나님을 모시는 성소聖所]가 되는 존재임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비로소 초월의 가능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2004.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