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 레오의 사순절 설교 묵상-19
Peace-Maker, many peace-keepers


주님은
“복되어라.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아!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일컬어지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온갖 불목과 증오와 싸움을 그만둡시다. 형제적 평화를 되찾기를 게을리하는 사람은 빠스카 축제에 동참할 생각을 아예 하지 마십시오. 형제들과 사랑을 나누지 않는 사람은 지존하신 아버지의 자녀들의 숫자에 들지 못할 것입니다. <大 레오>


20세기에 들어서 천만명 이상의 희상자를 낳은 사건이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한번은 러시아 정부의 공산혁명을 위해 희생 당한 2천만명의 사람들이었고, 다른 한번은 나찌에 의해 희생당한 1천만명의 유태인과 집시들이었습니다. 동물 행동학자인
콘라드 로렌츠 는 이처럼 인간이 자행한 대량 살인의 잔인성은 동물의 공격적인 본능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합니다. '무기'라는 치명적인 판도라의 상자가 인류에게 열려진 후로 기저基底에 있던 조악한 광폭함은 거침없이 사람들 사이를 질주하여서 인간이 어떻게 비인간화될 수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사르트르 의 지적처럼 인류 역사는 '침략의 역사'라고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역사의 주역들을 염오厭惡하는 비판가들의 등장을 두려워 한 나머지 역사는 공공연하게나 사밀하게나 철저히 합리화되어지곤 했습니다. 인간은 무의식 속에 숨겨진 자신의 파괴성에 눈을 뜨지 못했고, 그것은 집단 무의식이 되어, 광기로, 인면수심으로 드러나 눈 앞에서 벌어지는 총체적 죽음과 죽임에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때에도 또렷한 의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어둡게 휘감아 덮는 사악한 커튼을 활짝 열어 보임으로써 어두운 세상을 그대로 인정하려했던 뭇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자신의 안위와 섣부른 이익을 챙기려 했던 사람들을 부끄럽게 했으며,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해 주저하는 이들에게 분명한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평화를 말하였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팍스 로마나Pax-Romana, 팍스 어메리카나Pax-Americana가 아닌,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순전한 평화(Ειρενη, 에이레네)였습니다
.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그 어떤 세력도 평화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평화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올 때에 비로소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나는 당신의 소금입니다.
항상 짜게 남아 있으려니 쓰라림을 참아야 하고
그래서 편할 날이 없습니다.“
[이해인 詩 “소금호수에서”]


이는 평화는 나약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순간적인 감상이 아니라, 도리어 뼈를 깎는 투쟁과 고통 속에서만 비로소 피어날 수 있음을 말합니다. 평화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God is Peace-maker. 그러나 그것을 지키는 이는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We are many peace-keepers. 하나님께서 평화를 대신 지켜주십사 바라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평화의 청지기로서 우리가 자존적 존재로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가 하나님의 은혜에 反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으며, 그 은혜를 거스리고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보아야겠습니다.
또한 그런 이들을 향하는 우리의 조급한 시선이 형제애를 방해하는 구차한 악의 모양을 빚지 않도록 우리 자신이 먼저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평화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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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3장 4-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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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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