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만散漫과 침잠沈潛
마르틴 하이덱거Martin Heidegger가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에서 정확하게 지적한 바와 같이, 산만한 호기심도 끊임없이 지껄이는 원인 중에 하나이다. 하이덱거는 산만한 호기심을 가지고 이웃을 대하면 그와 참으로 함께 있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산만한 호기심 속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어느 한 곳에 차분하게 머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여 이리저리 부산하게 왔다갔다한다. 산만한 호기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항상 새로운 대상을 찾아 나서는데 이 경우에도 찾은 새로운 것에 머무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는 오직 또 다른 종류의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으로 새로운 것을 찾을 뿐이다.
그런 사람은 새로운 진리 하나를 알아 내려고 애쓰는 경우에도 알아낸 진리에 머무르면서 그것을 음미하고 침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심을 하나의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끊임없이 옮기기 위해서 이다. 그는 어느 하나에도 제대로 머무르지 못하는 것이다. - 안셀름 그륀 -
끊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를 피치 못해 접하고 살아야 하는 요즈음, 10년전 번역 출간된 책 반 퍼슨의 [급변하는 흐름속의 문화]Cultuur in Stroomversnelling를 떠올려 봅니다. 반퍼슨에 의하면 인류는 신화적 단계, 존재적 단계, 그리고 기능적 단계로 발전해 왔다고 합니다. 각각의 단계는 장점과 단점의 양면을 지니고 있는데, 오늘날의 사회 문화를 그는 ‘기능적 단계’로 명명하며, 이 문화의 부정적인 힘을 조작주의operationalisme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 상호관계를 마치 장기판의 말이나 카드 놀이의 숫자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처리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조작주의는 인간을 거대한 기계속에 맞춰진 나사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러한 반퍼슨의 지적은 근대 300년의 변화보다 근래 30년의 변화가 더 빠르며, 근래 30년의 변화보다 최근 3년의 변화가 더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오늘을 사는 우리로 하여 [인간]과 [시간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요하고 있습니다. 제한된 시간을 놓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화두가 되어 틈새 시간을 이용하고, 새벽형 인간이 되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은 그마만큼 인간 사회의 구성이 급속도로 치열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것은 틈새 시간과 새벽형 인간이라는 것 자체가 그렇다기 보다는 그런 인간형이 되어서 성취하고자 하는 내용이란 것이 본래적 인간의 모습과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기에 그럴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알뜰살뜰한 시간 탐색과 더불어 더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접하며 살고 있는 시대와 문화의 본질을 먼저 아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시대와 문화의 본질을 면밀히 검토하고 이해하여, 그것에 흔들리거나 맹목적으로 추종, 혹은 거부하는 삶이 아니라 그것들을 즐길 수 있으면서도 조금씩 변혁해 나가는 힘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하이덱거의 지적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도전이 됩니다. 산만散漫할 것인가 아니면 침잠沈潛해 볼 것인가?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문화 또한 시시각각으로 변화되고 있는 오늘 날 교회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다양하고 새로운 것에 발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말하고 싶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산만하고, 저급하다 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여기 저기 자칫 산만해 보이는 여행을 다니시며 공생애를 다 보내신 예수님도 침잠의 때를 놓치지 않으셨던 것처럼 말과 침묵 사이의 조율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겠습니다.<200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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