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 레오의 사순절 설교 묵상-24
자기 비움과 자기 십자가
인자하고 양순한 마음은 또한 관대해야 합니다. 사실 사람이 자기 창조주를 본받는 것 보다 더 합당한 일은 없습니다. 따라서 자기 능력의 정도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이행해야 합니다. <大 레오>
예수께서는 이제 곧 수난받으실 것을 첫 번째로 예고하신 후,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서 많은 신앙인들에게 버겨운 무게가 되어 주님을 따라 가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가 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저역시 예외가 아닌 것은, 주님과의 약속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유약한 마음새를 다잡지 못하고 베드로처럼 무지했고 주님과 저 자신을 속이는 모습에 치를 떨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언제나 그런 마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싶은 생각으로 골몰해지기도 하지만,
주님을 따라가려는 제자에로의 결심은 아직도 미궁속에서 허우적거리고만 있는 듯 합니다.
파심중적난破心中敵難이라 하여 마음 속의 도적을 잡기가 제일 힘들다고 했나요? 예수께서 ‘따라오는’ 조건으로 먼저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세상의 먼지가 우리 안의 하나님 형상을 가리고자 언제든 들어올 수 있음을 매순간 또렷한 눈으로 바라보라고 하신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자학적 강박증이 아니라 그것만이 하나님과 하나됨으로 그리스도를 따라갈 수 있는 추동drive이기에 하신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예수께서 자기를 비우시고 성육신하심으로 우리와 하나가 되신 것은 그리스도 영靈의 속성이 [자기비움]κενοσις 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분이 그 속성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심으로 우리와 하나가 되어 주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하나되고 모든 피조물들과 하나가 되는 순간은 [자기 비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기 십자가] 를 지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지라고 하시지 않고, 다른 이들의 십자가를 지라하시지 않고,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십자가를 질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 개개인에게 다채로운 형상을 심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천편일률적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른 이들이 지고 있는 십자가를 엿보고 섣불리 따라하려는 모습이 그릇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도리어 축제의 기쁨이 아닐까요? 그것은 무거운 짐에 눌려 수동적으로 세상을 살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고유한 색깔의 향연’ 을 시작하라는 적극적인 말씀일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지신 십자가도 죽음의 십자가였으나 부활의 십자가였지 않았습니까. 지금 우리 삶의 자리에서 저마다 힘써 행하고 있는 그 모든 일들은
하나님을 찬미하는 장엄한 교향곡의 한 파트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형제애를 나누며 함께 동참하는 이 아름다운 대서사시에서 나는 무엇을, 그리고 언제 연주해야하는지를 알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기 비움]과 [자기 십자가]는 필요충분 조건이 됩니다.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를 알기 위해서는 자기를 비워야 합니다. 창조주의 푸른 지휘봉이 가리키고 있는 은총의 새벽 을 보기 위해서는 뻣세고 조민躁悶한 마음이 아닌 텅 빈채로 계신 그분을 닮아야 할 것입니다.
■■■■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을 하거나 다투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은 나무랄 데 없는 순결한 사람이 되어
이 악하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
하늘을 비추는 별들처럼 빛을 내십시오.
[빌립보서 2장 13-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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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26>
자기 비움과 자기 십자가
인자하고 양순한 마음은 또한 관대해야 합니다. 사실 사람이 자기 창조주를 본받는 것 보다 더 합당한 일은 없습니다. 따라서 자기 능력의 정도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이행해야 합니다. <大 레오>
예수께서는 이제 곧 수난받으실 것을 첫 번째로 예고하신 후,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서 많은 신앙인들에게 버겨운 무게가 되어 주님을 따라 가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가 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저역시 예외가 아닌 것은, 주님과의 약속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유약한 마음새를 다잡지 못하고 베드로처럼 무지했고 주님과 저 자신을 속이는 모습에 치를 떨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언제나 그런 마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싶은 생각으로 골몰해지기도 하지만,
주님을 따라가려는 제자에로의 결심은 아직도 미궁속에서 허우적거리고만 있는 듯 합니다.
파심중적난破心中敵難이라 하여 마음 속의 도적을 잡기가 제일 힘들다고 했나요? 예수께서 ‘따라오는’ 조건으로 먼저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세상의 먼지가 우리 안의 하나님 형상을 가리고자 언제든 들어올 수 있음을 매순간 또렷한 눈으로 바라보라고 하신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자학적 강박증이 아니라 그것만이 하나님과 하나됨으로 그리스도를 따라갈 수 있는 추동drive이기에 하신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예수께서 자기를 비우시고 성육신하심으로 우리와 하나가 되신 것은 그리스도 영靈의 속성이 [자기비움]κενοσις 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분이 그 속성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심으로 우리와 하나가 되어 주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하나되고 모든 피조물들과 하나가 되는 순간은 [자기 비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기 십자가] 를 지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지라고 하시지 않고, 다른 이들의 십자가를 지라하시지 않고,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십자가를 질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 개개인에게 다채로운 형상을 심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천편일률적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른 이들이 지고 있는 십자가를 엿보고 섣불리 따라하려는 모습이 그릇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도리어 축제의 기쁨이 아닐까요? 그것은 무거운 짐에 눌려 수동적으로 세상을 살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고유한 색깔의 향연’ 을 시작하라는 적극적인 말씀일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지신 십자가도 죽음의 십자가였으나 부활의 십자가였지 않았습니까. 지금 우리 삶의 자리에서 저마다 힘써 행하고 있는 그 모든 일들은
하나님을 찬미하는 장엄한 교향곡의 한 파트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형제애를 나누며 함께 동참하는 이 아름다운 대서사시에서 나는 무엇을, 그리고 언제 연주해야하는지를 알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기 비움]과 [자기 십자가]는 필요충분 조건이 됩니다.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를 알기 위해서는 자기를 비워야 합니다. 창조주의 푸른 지휘봉이 가리키고 있는 은총의 새벽 을 보기 위해서는 뻣세고 조민躁悶한 마음이 아닌 텅 빈채로 계신 그분을 닮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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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을 하거나 다투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은 나무랄 데 없는 순결한 사람이 되어
이 악하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
하늘을 비추는 별들처럼 빛을 내십시오.
[빌립보서 2장 13-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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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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