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 레오의 사순절 설교 묵상-10
늘 자비심을 지니고 있는 사람


그가 이 세상에서 궁핍하게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만물의 주님 안에 모든 것을 소유할 은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선행을 하는 이들은 선행을 할 재물이 없을까봐 절대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서에 나오는 저 과부는 동전 두 닢으로 그의 신앙심이 칭송받았으며, 흔쾌한 적선은 냉수 한 잔으로도 그 상급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실 경건한 이들의 선함은 사랑에 따라 그 진정한 크기가 정해지며,
늘 자비심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자선 행위를 할 힘을 잃지 않습니다. <大 레오>


초대교회 교부들 가운데 빈부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처음 지적한 알렉산더의
클레멘트
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물질적인 것과 관련해 가난해지는 것은 유익이 되지 않는다. 반면 욕심에 끌려 부자가 되고자 한다면 잘못이다“

클레멘트의 시대와 오늘날의 사회구조는 비교할 수 없을 많큼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재물을 모으고 쓰는 마음의 문제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질을 모으고 사용하는데 있어서 어떤 방법과 인식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은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기초적인 필터링 작업에 속합니다. 오늘날 많은 부유한 사람들이 비난을 받는 것은 그들이 부자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부자가 되기까지의 수없이 많은 부정과 부패가 문제이며, 또한 부자이면서도 사회적인 책임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큰 이유입니다. 그래서 초대교부
요한 크리소스톰
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눅16:19-31)에서 부자가 그의 소유를 나누지 않은 것 자체가 이미 일종의 ‘도둑질’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늘 자비심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자선 행위를 할 힘을 잃지 않는다”는 大 레오의 말은 우리에게
‘자기부정’ 과 더불어 ‘자기충족’
의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담백하고도 번득이는 혜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함께 나누지 못하는 것은 가난해서가 아니라 사실 자비심이 없기 때문에, 우리 안에 다른 무엇이 꿰차고 앉아 있음으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들어설 공간이 없다는 말로 바꿔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비심으로 충만한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같은 몸을 입으신 사건을 기억합니다. 뻣세고 우둔한 우리에게 오셔서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함께 공감하시고, 함께 울웃으시고 함께 식탁의 축제를 벌여주신 그리스도를 기억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연민이나 값싼 동정심이 아니었으며, 서슴없이 제자로, 형제로, 친구로 불러주신
자비로운 우주의 울림
이었던 것입니다.

부와 가난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선을 그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부와 가난에의 ‘인식’을 스스로 조회해볼 뿐입니다. 나를 비워 주시고, 나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기억하면서 과연 나는 무엇을 버려왔고 무엇을 채워왔는지를, 내 안에 자비심을 늘 지니고 있는지 아닌지를 하나님 자비심에 비추어 돌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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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한1서 4장11-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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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09>
And
大 레오의 사순절 설교 묵상-9
자기 자신의 거룩성


이때는 온순과 인내와 평화와 평온함의 때입니다. 이때에 모든 악습의 더러움을 씻어내고 오래 지속될 덕들을 닦도록 해야합니다. 지금은 경건하고 용감한 영혼들이 다들 이들의 잘못들을 용서해 주고, 받은 능욕을 새겨두지 않으며, 모욕을 잊는 습관을 쌓을 때입니다. 지금은 충실한 영혼이 ‘오른손과 왼손에 의로움의 무기’를 가지고 자신을 단련할 때입니다. 그래서 ‘영예를 얻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악평을 받거나 호평을 받거나’(고후6:7-8) 언제든지 평온한 양심과 항구한 성실성으로 칭찬에 들뜨지 말고 모욕에 의기소침하지도 말아야합니다. 신앙심 있는 사람들의 단정한 태도는 슬퍼하는 모습이 아니라
거룩한 모습 입니다. <大 레오>



자기중심적 삶self-centrism
은 자아에의 욕구를 실천하는 삶입니다. 생명체가 지니고 있는 모든 욕구는 바로 이 자기 중심적 삶에서 나옵니다. 이것은 지극히 건강한 모습입니다. 완전한 이타적 삶은 건너뛸 수 없는 완전한 자기중심적 삶의 다음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반성적 삶self-reflection
은 타인과의 관계성에서 출발됩니다. 이는 다른 존재자들의 방식을 존중하며 상생적 가치를 도모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인식의 선로가 ‘나’에게로 향한 것은 자기중심적 삶과 동일하나, 이는 회귀적 구조로서 나로 향한 인식은 동일한 방식으로 타인을 향하여 언제나 관계성 안에서의 조화를 꿈꾸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두가지 삶의 방식은
자기 정체성self-identity
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기 자신과 동화同化되는 순간은 그 어떤 모습보다도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일차적으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스스로 긍적적인 평가를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정당한 정체성에 기인한 이러한 자기 인식은 참으로 건강하고도 신신한 맛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나
그릇된 자기중심적 삶
은 ‘자아에의 욕구’가 왜곡되어 편협하고도 좁다란 인식의 방향이 오직 ‘나’에게로만 향한 나머지
나 이외의 존재자들에 대한 시선 확장은 의심과 대상화로 일관하고 맙니다. 그리고 결국 자기 자신만의 안위와 편리만을 추구하는 왜소한 인간성을 스스로 자초하고 말 뿐입니다. 또한
공허한 자기반성적 삶
은 자기 확신없이 이리저리 부유하는 모습으로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고, 땅속 달란트만을 바라보며 한숨쉬는 나머지 거울을 닦다 거울을 깨버리는 무지한 미성숙에로 남게되고 맙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데데한 평가만 내리는 사람은 그 기운이 얇고 흐려 초췌한 정신으로 배리背理할 뿐입니다.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찾겠다는 것緣木求魚은 와신상담과 다르며, 자포자기하는 사람은 살신성인하는 사람에 비할 수 없습니다. 大 레오가 제시한것처럼 쉽게 들뜨거나 상처받아 슬퍼하거나 의기소침하지 않는 것은 순전한 자아정체성을 발판삼아 서서 고른 호흡이 가능할 때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섭리 안에서 지음 받은 많은 뜻 가운데 으뜸은 우리 안에 작은 우주를 지으시고 이치를 세워주신 그분의 뜻을 높이 받들어
그릇되거나 공허하지 않는 참 나를 이루며 사는 것
입니다. 그것이 大 레오가 말한 거룩한 삶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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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믿음에 미덕을 더하고, 미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교우끼리의 사랑을,
교우끼리의 사랑에 만민에 대한 사랑을 더하십시오.
여러분이 이런 것들을 풍성하게 갖추면
여러분은 부지런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고 할 것이며
마침내는 그를 잘 알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5-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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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08>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