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 레오의 사순절 설교 묵상-12
그분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우리 영혼에 정돈되지 않은 부분이나 불결한 부분이 없도록 늘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합니다. 우리의 내적 구조물은 그것을 만드신 분의 도움 없이 유지할 수 없고, 그것을 세우신 분의 보호가 먼저 있지 않고서는 무사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성적인 돌들이며 살아 있는 재료들 이기 때문에, 창조주께서 당신 손으로 우리를 만드신 것과 같이
복구되어야 할 우리도 우리를 만드신 그분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大 레오>
“한 인간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은 단순한 어떤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게 하는 것이다.“ [디히트리히 본회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가 오기전까지는 너무나도 요원한 나라였으나 몸소 가르치시고, 보여 주신 그분으로 인하여 그 나라의 신비는 무지했던 많은 이들에게 선연히 드러났습니다. 성서의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부르시고 찾아가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을 그리워했고, 사람을 사랑했으며, 사람과 함께 있음으로 당신 자신도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를 황홀하게 맛볼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사람과 관계하지 않는 그분을 상상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것은 그분은 사람 사이에 계심으로 그가 누구이신지를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성그러운 눈빛 하나로 많은 이들의 아픔과 삶을 읽으신 그분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단순한 종교적 행위에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고자 하는 삶의 의지속에서 발현될 수 있음을 우리 모두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파스칼 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이성보다 의지를 다스리기를 원하신다”고 했던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듯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명석한 생각을 우리에게 뽐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과 의지를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뜻을 조율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겠습니까? 당신과 나를 그리워하면서 찾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생에 가장 가치로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大 레오는 인간을 ‘이성적인 돌’이며 ‘살아 있는 재료’라 했습니다. ‘이성적인 돌’ 이란 건축자의 구상과 계획을 알고, 그의 손위에 올라 서도록 ‘준비하는 돌’ 이란 말로 읽혀집니다. ‘살아 있는 재료’ 란 집터에 들어와 사는 이들을 해하지 않고, 늘 신선하고도 맑은 공기로 호흡할 수 있도록 자정自淨하는 안으로 밖으로 ‘천리향인 존재’ 라고 읽혀집니다. 건축자의 탁월한 선택, 그리고 그와 더불어 눈빛과 가슴빛으로 교감하는 이.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입니다.
■■■■
여러분은 이미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지 않았습니까?
주님께로 가까이 오십시오. 그분은 살아 있는 돌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나님께는 선택을 받은 귀한 돌입니다.
여러분도 신령한 집을 짓는데 쓰일 산 돌이 되십시오.
그리고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신령한 제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리십시오.
[베드로전서 2장3-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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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11>
그분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우리 영혼에 정돈되지 않은 부분이나 불결한 부분이 없도록 늘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합니다. 우리의 내적 구조물은 그것을 만드신 분의 도움 없이 유지할 수 없고, 그것을 세우신 분의 보호가 먼저 있지 않고서는 무사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성적인 돌들이며 살아 있는 재료들 이기 때문에, 창조주께서 당신 손으로 우리를 만드신 것과 같이
복구되어야 할 우리도 우리를 만드신 그분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大 레오>
“한 인간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은 단순한 어떤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게 하는 것이다.“ [디히트리히 본회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가 오기전까지는 너무나도 요원한 나라였으나 몸소 가르치시고, 보여 주신 그분으로 인하여 그 나라의 신비는 무지했던 많은 이들에게 선연히 드러났습니다. 성서의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부르시고 찾아가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을 그리워했고, 사람을 사랑했으며, 사람과 함께 있음으로 당신 자신도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를 황홀하게 맛볼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사람과 관계하지 않는 그분을 상상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것은 그분은 사람 사이에 계심으로 그가 누구이신지를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성그러운 눈빛 하나로 많은 이들의 아픔과 삶을 읽으신 그분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단순한 종교적 행위에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고자 하는 삶의 의지속에서 발현될 수 있음을 우리 모두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파스칼 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이성보다 의지를 다스리기를 원하신다”고 했던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듯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명석한 생각을 우리에게 뽐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과 의지를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뜻을 조율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겠습니까? 당신과 나를 그리워하면서 찾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생에 가장 가치로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大 레오는 인간을 ‘이성적인 돌’이며 ‘살아 있는 재료’라 했습니다. ‘이성적인 돌’ 이란 건축자의 구상과 계획을 알고, 그의 손위에 올라 서도록 ‘준비하는 돌’ 이란 말로 읽혀집니다. ‘살아 있는 재료’ 란 집터에 들어와 사는 이들을 해하지 않고, 늘 신선하고도 맑은 공기로 호흡할 수 있도록 자정自淨하는 안으로 밖으로 ‘천리향인 존재’ 라고 읽혀집니다. 건축자의 탁월한 선택, 그리고 그와 더불어 눈빛과 가슴빛으로 교감하는 이.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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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이미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지 않았습니까?
주님께로 가까이 오십시오. 그분은 살아 있는 돌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나님께는 선택을 받은 귀한 돌입니다.
여러분도 신령한 집을 짓는데 쓰일 산 돌이 되십시오.
그리고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신령한 제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리십시오.
[베드로전서 2장3-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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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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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 레오의 사순절 설교 묵상-11
스스로 자기 자신을 심판해 보십시오
영혼의 순결과 마음의 거울을 가리는 모든 것을 주의깊게 벗겨 내야 하며, 그 광채를 되찾기 위해서 더 깨끗해져야 합니다. 각자 자기 양심을 성찰하고, 엄한 심판대에서처럼 스스로 자기 자신을 심문해 보아야 합니다. 각자 자기 마음의 내면에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가 있는지, 자기 안에 어떤 육적 원욕이 영적 원의를 거슬러 싸움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비천한 것을 경멸하고 높은 지위를 탐하고 있지는 않은지, 부정한 이득을 얻고서 즐거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재산을 과도하게 늘리고서 기뻐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른 이의 행복에 시기심을 불태우거나 다른 이의 불행을 좋아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大 레오>
폭설로 며칠동안 바깥 출입을 못하던 차에 오랜만에 대형할인 매장에 갔습니다. 아내가 미리 적어두었던 목록대로 물건을 사고 아이들과 함께 계산대로 가던 길에 장난감 코너가 눈에 들어옵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새라 아이들은 바쁜 걸음으로 그리로 향합니다. 한참을 둘러보며 이것 저것 만지는데, 둘째 찬이가 사달라고 졸라대는 장난감을 유심히 살펴보니 이렇게 써있습니다.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러 오는 외계인을 물리치는 *** 레인저”
찬이는 얼마전 TV에서 한창 방영되었던 ‘파워포스 레인저’라는 프로그램 탓에 색깔이 빨갛고, 노랗고, 파란 가면을 쓰고 있는 캐릭터는 죄다 동일시의 대상어서 앞으로 양주먹을 차레로 내지르며 이내 구매욕을 터뜨리곤 합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 얼러보기도 하고, 혼을 내기도 하여 겨우 손에 쥐고 있는 장난감을 내려 놓게하고 자리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문득 상자 겉에 써있던 케치 프레이즈가 마음에 걸립니다.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러 오는 외계인.....” 미래 전사에 걸맞는 맞상대를 설정하려다 보니 외계인이었을 것이고, 지구를 지킨다는 준법적인 명분을 찾다보니 ‘환경파괴’라는 화두에서 힌트를 얻어 만든 문구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환경 파괴의 주범을 외계인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아이들의 구매욕을 자극하려는 장사속이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인간 속에 자리하고 있는 속된 습성이 뭍어 있는 것는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환경을 파괴하는 생명체는 인간밖에 없을거라 했나요. 무릉도원에 사람 손이 닿으면 한달도 채못가 더 이상 이름값을 하지 못할 것이라지요. 지구 자원 남용과 환경파괴 최대의 주범인 미국이라는 나라는 지구도 모자라 화성에서 약탈해 올 천연가스로 떼돈을 벌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지요. 그 뉴스를 보았을때는 정말이지, 화성에 외계인이 없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만약 화성인이 그 별 어딘가에 살고 있다면, 그네들은 그들을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그랬듯이 가만놔두지 않을지도 모르니까요.
아, 그런데 지금껏 인간의 상상력은 외계인이 침략해 온다 하였습니다. 정작 우리들이 책임져야할 죄악된 모습을 외계인에게 둘러 씌우고, 마치 우리들이 피해자인양 의로운 사람인양 장난감에도 새겨 놓고 있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말이 생각이 납니다. “신성한 마음을 잃어버린 상태에서는 어떤 것도 신성하지 않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되어 버린다.“ [오렘 리온스 / 인디언 오논다가 족]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내면의 평화가 있다하면서도 다른 존재자의 신음에 무감각한 것은 더 이상 그리스도의 평화가 아닙니다. 나의 책임이며 나의 죄인 것을 타인이게 전과시키는 모습이라면 그 순간 그리스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이들의 아픔과 책임조차도 당신 것인양 지고 가셨던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진정 내 마음의 기쁨이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기쁨이어든, 그 기쁨은 다른 존재자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쁨이며, 풀잎소리에, 풀잎바람에 귀를 대고 우주를 안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일 것입니다.
■■■■
남을 판단하면서도 자기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으니
결국 남을 판단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입니다.
이런 짓을 일삼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마땅히 심판을 내리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자기도 같은 짓을 하면서 남이 그런 짓을 한다고 심판하는 자가 있는데,
그런 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것 같습니까?
[로마서 2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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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10>
스스로 자기 자신을 심판해 보십시오
영혼의 순결과 마음의 거울을 가리는 모든 것을 주의깊게 벗겨 내야 하며, 그 광채를 되찾기 위해서 더 깨끗해져야 합니다. 각자 자기 양심을 성찰하고, 엄한 심판대에서처럼 스스로 자기 자신을 심문해 보아야 합니다. 각자 자기 마음의 내면에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가 있는지, 자기 안에 어떤 육적 원욕이 영적 원의를 거슬러 싸움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비천한 것을 경멸하고 높은 지위를 탐하고 있지는 않은지, 부정한 이득을 얻고서 즐거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재산을 과도하게 늘리고서 기뻐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른 이의 행복에 시기심을 불태우거나 다른 이의 불행을 좋아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大 레오>
폭설로 며칠동안 바깥 출입을 못하던 차에 오랜만에 대형할인 매장에 갔습니다. 아내가 미리 적어두었던 목록대로 물건을 사고 아이들과 함께 계산대로 가던 길에 장난감 코너가 눈에 들어옵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새라 아이들은 바쁜 걸음으로 그리로 향합니다. 한참을 둘러보며 이것 저것 만지는데, 둘째 찬이가 사달라고 졸라대는 장난감을 유심히 살펴보니 이렇게 써있습니다.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러 오는 외계인을 물리치는 *** 레인저”
찬이는 얼마전 TV에서 한창 방영되었던 ‘파워포스 레인저’라는 프로그램 탓에 색깔이 빨갛고, 노랗고, 파란 가면을 쓰고 있는 캐릭터는 죄다 동일시의 대상어서 앞으로 양주먹을 차레로 내지르며 이내 구매욕을 터뜨리곤 합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 얼러보기도 하고, 혼을 내기도 하여 겨우 손에 쥐고 있는 장난감을 내려 놓게하고 자리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문득 상자 겉에 써있던 케치 프레이즈가 마음에 걸립니다.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러 오는 외계인.....” 미래 전사에 걸맞는 맞상대를 설정하려다 보니 외계인이었을 것이고, 지구를 지킨다는 준법적인 명분을 찾다보니 ‘환경파괴’라는 화두에서 힌트를 얻어 만든 문구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환경 파괴의 주범을 외계인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아이들의 구매욕을 자극하려는 장사속이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인간 속에 자리하고 있는 속된 습성이 뭍어 있는 것는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환경을 파괴하는 생명체는 인간밖에 없을거라 했나요. 무릉도원에 사람 손이 닿으면 한달도 채못가 더 이상 이름값을 하지 못할 것이라지요. 지구 자원 남용과 환경파괴 최대의 주범인 미국이라는 나라는 지구도 모자라 화성에서 약탈해 올 천연가스로 떼돈을 벌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지요. 그 뉴스를 보았을때는 정말이지, 화성에 외계인이 없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만약 화성인이 그 별 어딘가에 살고 있다면, 그네들은 그들을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그랬듯이 가만놔두지 않을지도 모르니까요.
아, 그런데 지금껏 인간의 상상력은 외계인이 침략해 온다 하였습니다. 정작 우리들이 책임져야할 죄악된 모습을 외계인에게 둘러 씌우고, 마치 우리들이 피해자인양 의로운 사람인양 장난감에도 새겨 놓고 있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말이 생각이 납니다. “신성한 마음을 잃어버린 상태에서는 어떤 것도 신성하지 않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되어 버린다.“ [오렘 리온스 / 인디언 오논다가 족]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내면의 평화가 있다하면서도 다른 존재자의 신음에 무감각한 것은 더 이상 그리스도의 평화가 아닙니다. 나의 책임이며 나의 죄인 것을 타인이게 전과시키는 모습이라면 그 순간 그리스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이들의 아픔과 책임조차도 당신 것인양 지고 가셨던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진정 내 마음의 기쁨이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기쁨이어든, 그 기쁨은 다른 존재자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쁨이며, 풀잎소리에, 풀잎바람에 귀를 대고 우주를 안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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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판단하면서도 자기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으니
결국 남을 판단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입니다.
이런 짓을 일삼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마땅히 심판을 내리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자기도 같은 짓을 하면서 남이 그런 짓을 한다고 심판하는 자가 있는데,
그런 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것 같습니까?
[로마서 2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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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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