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식탁에 둘러 앉는 시간은 아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입니다. 오늘 대화에서 첫째 아들 건이가 하는 말이, "아빠, 칠학년이 한 백명 쯤 되는데요, 그 중에서 이번에 써머 스쿨을 듣지 않으면 다시 칠학년으로 유급되는 아이들이 사십 명이 넘는대요."

친한 친구 중에도 그 중에 속하는 아이가 있다고 껄끄럽게 꺼내는 말을 통해서 아이의 마음을 읽습니다. 대충은 알고 있는 현실이지만 이 정도가 될 줄은 잘 몰랐습니다. 그저 무사히 학교에 잘 다녀주는 것만으로 감사할 일이다 싶었지만 열학한 환경 속에 아이가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저도 학부모 아닙니까?

때때로 아이를 멀리 다른 도시로 유학을 보낼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아니 가깝게는 미션... 센터가 있는 플랙스탭에 있는 학교로 보내면 어떨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보기도 하지만 그 때 마다 아이들이 반대를 하고 나섭니다. 이유야 가지 가지였지만, 어찌했던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 호피 땅이 서럽도록 정이 들어버린 그런 곳인 까닭이었습니다. 대견스런 아이들... 내가 저만했을 때는 어땠는가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다시금 제 스승으로 커다랗게 이 호피 마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루 종일 들에 나가 일을 했습니다. 나무에 물을 대는 관계시설 배관 작업을 하고 왔습니다. 다시 시커멓게 팔뚝이 그을려서 왔지만, 돈 한푼 받는 것도 아닌데 나를 도와 열심히 일해 준 우리 교회 폴 예스떼와 아저씨와 지금 그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새신자로 처음 교회에 왔던 투박한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를 위한 기도로 하루를 마감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지금은 선교지의 일만으로도 벅찬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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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가꾼다는 것은 흙과 뿌리를 보듬어 줄기와 가지를 튼튼하게 하고 끝내 색색으로 올라오는 꽃과 열매를 보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정원을 가꾼다는 것은 흙과 뿌리를 침투해 들어가 본디 열매를 보려 뜻하던 식물에 해를 끼치는 것들을 잘 구분해 내어 제거하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기실 정원을 가꾼다는 것은 이 후자의 과정에 더 많은 시간과 비중을 할애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생활을 한다 할 때에 무엇가를 위해 매진하고 목표로 설정한 것에만 매달리다가는 알 수 없는 때에 흩뿌려진 원치 않는 것들이 흙더미를 깊이 파고 들어 두툼한 저만의 영역을 확보하게 된 후 이내 줄기의 밑둥을 옭아매 버리는 것을 간과하게 되곤 합니다.
하여 영적 생활이란 무엇이 좋고 나쁜 것이며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가려내는 혜안을 길러내는 것에서 시작해 결국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를 크게 그려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眞이라든가 善이라든가, 正이라든가 義라고 하는 것들은 과연 美를 향해 있으며, 이는 홀로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시며, 그러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 사이의 간극을 꽉 채우고 계신 분을 향한 호흡을 영적 생활이라 부르는 까닭입니다. <2012년 5월 4일, 가족과 함께 정원의 잡초를 제거한 날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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